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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화]

합의는 말이 아니라 침묵의 무게로 만들어진다

작성: 2026.04.18 18:19 조회수: 3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응급실 천장 한쪽 귀퉁이에서 비상등이 두 번 깜빡였다. 두 번째 깜빡임이 첫 번째보다 길었다. 세온은 그걸 보면서 발전기가 호흡을 고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오래는 아니다.

유리가 세워 놓은 간이 메모판에는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다.

'04:00'. 검은 매직으로 굵게, 지울 생각 없이 눌러 쓴 숫자였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산소통 잔량 기준 응급 환자 생존선'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온은 그 메모판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응급실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이 거기 갔다. 글씨가 너무 또렷해서였다. 유리가 그 숫자를 쓸 때 손이 떨렸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세온은 창문 쪽으로 두 걸음 옮겼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가로등은 진작 꺼져 있었고, 건물 외벽에 붙은 비상 유도등 하나만 주황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 빛이 유리창에 반사돼 응급실 바닥 위를 얕게 훑었다. 세온은 그 빛이 지나가는 자리를 잠깐 내려다봤다가 돌아섰다.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동조 편성 다시 확인합니다."

세온이 말했다. 말투가 회의 개시가 아니라 확인 작업처럼 나온 건 의도였다. 이미 결정된 것처럼 말해야 흔들릴 여지가 줄었다.

"태민 씨, 나, 하린. 셋이 군 검문소 루트로 연료 대체 경로 탐색. 유리는 여기 남아서 환자 관리. 윤호 씨와 도혁 씨도 응급실 대기."

도혁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소리가 났다.

"나는 여기 남는 게 맞아요? 제가 민간 루트 아는 사람인데."

"알아서요."

태민이 짧게 끊었다. 도혁을 보지도 않고.

"모른다는 사람 데리고 가면 부담이고, 안다는 사람 데리고 가면 변수예요."

도혁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변수라고 하시는 게 저한테는 칭찬처럼 들리는데."

세온은 두 사람 사이 공기를 한 박자 둔 뒤 끊었다.

"민간 루트는 보류예요. 지금은 연료 대체 경로 하나만. 복잡하게 가지 치면 둘 다 잃어요."

그리고 윤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윤호는 바닥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그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등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어제 약국 카운터를 뒤질 때 생긴 것인지, 그 전에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윤호 씨."

윤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밤새 잔 것 같지 않았다.

"연료 위치요."

세온이 말을 천천히 꺼냈다. 추궁이 아니라 확인이라는 속도로.

"지하 보일러실이라고 하셨는데 약국 카운터 뒤에서 빈 통이 나왔잖아요. 그 정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윤호가 잠깐 입술을 닫았다. 그러다 말했다.

"재난 초기 문건에 있었어요. 병원 권역별 비상 연료 지정 저장소. 지하 보일러실이 1순위였고, 약국 카운터 뒤는 2순위였어요."

응급실 안이 조용해졌다. 유리가 메모판 쪽에서 이쪽을 봤다. 환자 한 명이 낮게 신음했고, 유리가 즉시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 하나가 이 공간의 시간이 얼마나 촘촘하게 돌아가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럼 두 위치 다 알고 계셨던 거네요."

세온이 말했다. 목소리에 날이 없었다. 그게 더 무거웠다.

윤호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보일러실이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용량이 더 크니까. 약국은 보조였고. 그래서 먼저 보일러실을 말한 거고."

잠깐 멈췄다.

"보일러실에 없을 거라는 건 몰랐습니다."

세온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지금 당장 가릴 방법이 없었다. 있다 해도, 지금은 그게 우선이 아니었다.

"약국 통은 왜 비어 있었을 것 같아요."

"누군가 먼저 가져갔겠죠."

윤호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몰랐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도혁이 헛기침을 했다. 의도한 것 같은 박자였다. 세온이 도혁을 봤다. 도혁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민간 루트 거점이요."

도혁이 말했다. 이번엔 능청스럽지 않았다.

"거기 창고에 연료가 있어요. 확인한 건 아닌데, 있을 가능성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달라요."

"가능성이요."

태민이 그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부사관님은 군 검문소 가능성도 확인 안 하셨잖아요."

도혁이 이번엔 태민을 똑바로 봤다.

"둘 다 미지수면 숫자 더 많은 쪽이 낫죠."

태민이 대꾸하지 않았다. 입을 닫은 채 팔짱을 꼈다. 그 침묵이 반박보다 더 단단했다.

하린이 그 사이에서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잠깐요."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집중할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새벽 로그요. 세 시 십오 분에 병원 서쪽 출구 자동문 코드 조회한 외부 단말기."

하린이 화면을 세온 쪽으로 기울였다. "기기 식별 코드 추적했어요. 군 통신 관할 장비예요."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발전기가 낮게 한 번 떨렸다. 그 진동이 바닥을 타고 발바닥까지 올라왔다.

"군 검문소에서 이쪽 자동문 코드를 조회했다는 거예요?"

유리가 먼저 물었다.

"기기가 그 계열이라는 거예요. 어느 검문소인지까지는 모르고."

하린이 태블릿을 내렸다.

"근데 군 관할 장비가 병원 내부 출입문 코드를 왜 새벽에 조회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태민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잠깐이었지만 세온은 그걸 봤다. 태민이 이미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처음 듣는 건지. 그 한 박자의 침묵이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온은 그 침묵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군 검문소 루트 선택한 게,"

도혁이 말을 꺼냈다.

"거기서 이쪽을 이미 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세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경우의 수가 빠르게 정렬됐다. 군 검문소가 병원 서쪽 출구를 파악하고 있다면, 이동 경로가 노출된 것과 같다. 아니면 반대로, 누군가 군 장비를 통해 코드를 빼냈을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이동 계획을 그대로 쓰는 건 위험했다. 세온은 그 판단이 서는 데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오 초가 지나고 나서야 입이 열렸다.

"이동 시각 앞당겨요."

세온이 말했다.

"원래 두 시간 뒤였는데, 한 시간으로 줄여요. 경로는 서쪽 출구 말고 북쪽 비상계단 쪽으로 틀어요. 태민 씨, 그쪽 지형 알아요?"

태민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확인해야 할 구간이 하나 있어요. 삼 분 줘요."

"주겠습니다."

세온이 하린 쪽으로 돌아섰다.

"하린 씨, 로그 전체 캡처 백업 해 놓고. 이 태블릿이 유일한 사본이면 안 돼요."

하린이 이미 화면을 누르고 있었다.

"하고 있어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세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이 팀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말이 아니라 손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세온은 그제야 숨을 한 번 내렸다. 길게, 소리 없이. 윤호는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고, 도혁은 다시 벽에 등을 기댔고, 유리는 메모판 숫자를 지우지 않은 채 환자 쪽으로 돌아갔다. 합의가 이루어진 건지 아닌지 말로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게 이 응급실의 방식이었다. 선언이 아니라 이동으로 동의를 표하는 방식.

북쪽 비상계단 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벽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소리인지, 아니면 밖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인지. 세온은 그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잠시 귀를 세웠다. 발전기가 다시 한 번 낮게 떨렸다. 메모판의 숫자는 지워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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