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여덟 시 십오 분이었다.
서하가 사무실 문을 밀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도윤의 빈 의자였다. 코트는 걸려 있었다. 가방도 책상 옆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없었다. 서하는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면서 슬쩍 시계를 봤다. 여덟 시 십오 분. 도윤이 이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형광등이 아직 전부 켜지지 않은 사무실은 창가 쪽만 희끄무레하게 밝았고, 복도에서 청소 카트 바퀴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일찍 왔네."
뒤에서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는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자기 자리를 향해 걸어오다가 도윤 쪽 의자를 한 번 훑었다.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았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지우가 무언가를 못 본 척할 때는 보통 이미 알고 있을 때였다. 서하는 그 사실을 입사 석 달 만에 배웠다.
서하는 어제 서랍에 넣어 둔 메모를 꺼냈다. 지우가 건넨 손 메모.
'6개월 공백 시작점 — 오승우 팀장 이전 배정 기록 확인 필요.'
볼펜 끝이 약간 눌린 필체였다. 급하게 쓴 것치고는 글자가 고른 편이었다. 서하는 그걸 다시 한 번 읽고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은 보고서 기한이었다. 지금 이걸 꺼내 들고 있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아홉 시가 조금 안 됐을 때 도윤이 돌아왔다. 파일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표정은 늘 그렇듯 읽을 수 없었지만, 걸음이 평소보다 약간 느렸다. 서하는 인사를 했다. 도윤은 "어." 한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파일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소리가 났다. 둔탁했다. 지우가 텀블러 뚜껑을 여닫는 척하며 그쪽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보고서, 오늘 오전 제출이죠?"
서하가 물었다. 도윤은 화면을 보면서 대답했다.
"알고 있어."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서하는 자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어젯밤 수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오늘 안으로, 차진혁이 알기 전에. 그 말을 지금 도윤한테 해도 될지,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할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이 이미 움직인 뒤라면, 지금 그 말을 꺼내는 건 확인이 아니라 추궁이 될 것 같았다.
오전 열 시가 넘었을 때 차진혁이 내려왔다.
복도 쪽에서 구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사무실 문이 열리기 전에 서하는 이미 알아챘다. 저 걸음걸이는 이전에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차진혁은 팀장 회의 자료를 들고 있었고, 그 옆에 오승우가 따라붙어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오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우가 텀블러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는데 유난히 또렷했다. 서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강 심사역."
차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윤은 화면에서 눈을 들었다. 표정 변화는 없었다.
"오늘 오전 중으로 소송 추가 건 배당 통보가 갑니다. 고액 장기 미지급 건인데, 이번 건은 원고 측 대리인이 바뀌었어요. 이전 건보다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진혁은 말하면서 도윤이 아니라 서하 쪽을 한 번 봤다. 딱 한 번, 그리고 다시 도윤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찰나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서하는 표정을 고정했다. 뭔가를 들켰다는 느낌이 드는 게 싫었다. 들킨 게 없는데도.
"자료 요청이 들어오면 직접 대응하지 말고 저한테 먼저 올리세요. 창구는 하나여야 합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두 글자였다. 차진혁은 잠깐 멈췄다. 그 멈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짧았지만, 서하는 느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이 저게 아니었다는 것을. 오승우는 그 사이 서하 쪽을 슬쩍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서하는 그 얼굴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사무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만 창 너머에서 낮게 깔렸다.
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고 측 대리인이 바뀐 거, 우리 건 공소장이 이미 나간 다음이잖아요. 그게 왜 지금 통보가 되는 거예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는 지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반쯤은 알았다. 대리인이 바뀐 시점이 소장 제출 이후라면, 그건 단순한 전략 교체가 아닐 수 있었다. 상대가 뭔가를 더 알게 됐을 때 대리인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서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꾹 눌렀다. 아직 확인된 게 없었다.
"그냥 교체일 수도 있죠."
서하가 말했다. 지우가 서하를 봤다. 그 눈빛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서하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점심은 세 명이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지우가 오늘 메뉴가 왜 항상 이 타이밍에 돼지고기 볶음이냐며 혼자 투덜댔다.
"금요일마다 이거예요, 진짜. 구내식당이 달력을 보고 저를 괴롭히는 거 아닌지."
서하는 그냥 웃었다. 도윤은 국을 두 번 떠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밥을 반도 안 먹은 것 같았다.
"드셔야죠."
서하가 말했다가 바로 후회했다. 도윤이 자신을 봤다. 짧게.
"네가 걱정할 거 아니야."
말이 차갑지는 않았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인지 서하는 그 말이 오래 걸렸다. 지우가 옆에서 볶음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으며 분위기를 흘려보냈다.
"저는 걱정 안 해도 되죠? 저는 다 먹었으니까."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그 한 마디 덕분에 테이블이 조금 가벼워졌다.
오후에 배당 통보가 실제로 들어왔다. 서하가 시스템에서 확인했을 때 사건 번호 옆에 '원고 대리인 변경 — 2차 소장 예고' 메모가 달려 있었다. 이전 소장과 같은 사건 번호인데 대리인 코드가 달랐다. 서하는 화면을 캡처하려다가 멈췄다. 이걸 차진혁한테 먼저 올려야 할지, 도윤한테 말해야 할지, 잠깐 계산이 섰다. 창구는 하나여야 한다는 말이 귀 안에서 다시 울렸다. 그리고 결국 의자를 돌렸다.
"심사역님, 대리인 코드가 바뀐 게 지금 시스템에 찍혔는데요."
도윤이 서하 쪽으로 왔다. 화면을 한 번 봤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하는 그 짧은 동선 안에서 도윤이 뭔가를 확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이 한 지점에서 잠깐 멈췄었다. 사건 번호 앞쪽, 배당 경로 표시 칸이었다. 서하도 그 칸을 다시 봤다. 숫자와 코드가 나열된 칸이었는데, 뭐가 이상한지는 바로 읽히지 않았다. 도윤한테는 읽혔던 것 같았다.
퇴근 무렵, 서하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 문자창이었다. 어제 입력했다가 지운 다섯 글자.
'네, 먹고 다녀요.'
그 문장을 다시 쳤다.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멈췄다. 오늘도 같은 자리였다. 다만 오늘은 조금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 사무실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서하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전송은 하지 않았다.
배당 경로 표시 칸에서 도윤의 시선이 멈췄던 그 지점이, 퇴근길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