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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6화]

규칙을 깨는 건 언제나 말이 아니라 침묵이다

작성: 2026.04.13 15:02 조회수: 3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아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창문 없는 응급실에서 아침을 알 수 있는 건 벽 위쪽 환기구에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뿐이었다. 그 빛은 늘 비스듬하고 먼지가 섞여 있었다. 세온은 눈을 뜨면서 제일 먼저 그 선을 확인했다. 비상등 붉은빛과 환기구 빛이 바닥에서 겹치는 지점. 그게 시계 대신이었다.

컵라면 용기 열두 개 중 어젯밤 여섯 개가 소비됐다. 남은 여섯 개가 비닐봉지 안에 묶여 있었다. 세온은 그 봉지를 응급 키트 옆에 밀어 놓으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여섯 명. 여섯 개. 꼭 맞아떨어지는 수가 오히려 불안했다. 어젯밤 도혁이 먼저 손을 뻗었을 때 세온이 막아선 건 컵라면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손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움직였는지 때문이었다. 배고픈 사람의 손과 습관이 된 사람의 손은 다르다. 도혁의 손은 후자였다.

유리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환자 쪽 커튼 앞에 서서 손목 맥박을 재고 있었다. 중증 환자 둘 중 한 명은 어젯밤부터 열이 올랐다. 유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가 뗐다.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그게 더 나쁜 신호라는 걸 세온은 알고 있었다. 의사가 표정을 지울 때는 이미 계산이 끝난 것이다.

"회의할 거면 지금 해요."

유리가 커튼을 치며 말했다. 커튼이 금속 레일 위에서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오전 안에 약국 이동 여부 결정 안 하면 오늘도 못 움직여요."

태민이 벽 쪽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든 것 같았지만 눈이 너무 빨리 뜨였다. 군인 출신의 몸은 완전히 잠드는 법이 없다는 걸 세온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도혁은 비닐 위에 등을 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하린은 구석에서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리고 화면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윤호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멈칫했다. 오른손을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냈다. 세온은 그 동작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온이 바닥 한가운데 응급 키트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였다. 회의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좁고 낮은 자리였다. 누구는 쪼그리고, 누구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도혁만이 여전히 앉지 않고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그 한 발짝이 작은 것 같아도 응급실 안에서는 꽤 먼 거리였다.

"약국은 두 루트야."

세온이 바닥에 응급 키트 덮개를 펼쳐 손으로 선을 그렸다.

"서쪽으로 나가서 1층 주차장 통과, 거기서 외벽 따라 골목 진입. 아니면 동쪽으로 나가서 큰 도로 건너 직선."

손가락이 두 방향을 짚었다. "동쪽이 거리는 짧아. 근데 개활지 구간이 길다."

윤호가 입을 열었다.

"동쪽은 안 됩니다."

말이 너무 빨랐다. 이유보다 결론이 먼저 나왔다.

세온이 그를 봤다.

"왜요."

"봉쇄 구간 진입 위험이 있어요. 큰 도로 쪽은 군 통제 범위가 불확실합니다."

"불확실하다는 게 어디서 나온 정보예요?"

태민이 물었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날이 서 있다는 신호였다.

윤호가 잠깐 멈췄다.

"현장 상황 판단입니다."

"현장 판단을 할 만큼 어젯밤에 어디 다녀왔어요?"

도혁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물었다. 가볍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 웃음이 유일하게 위험한 지점이었다.

윤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세온은 그 침묵을 3초 세었다. 3초는 부정과 긍정 사이에서 사람이 어떤 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려 할 때 걸리는 시간이었다. 전직 상황실 요원의 몸이 익힌 감각이었다. 응급실 안에서 비상등이 낮게 웅웅거렸다. 그 소리가 침묵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

하린이 손을 들었다. 아주 조금, 학교 교실에서 하듯.

"저 확인한 거 있는데요."

모두가 하린 쪽을 봤다. 하린은 태블릿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화면에는 봉쇄선 갱신본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하린의 손이 살짝 떨렸다. 화면 때문이 아니라 여섯 명의 시선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비교해봤어요. 전날 버전이랑."

하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동쪽 도로 좌표가 삭제된 건 아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서쪽 골목 구간에도 진입 허가 코드가 바뀌었어요. 전날엔 일반 통행 코드였는데 갱신본에선 군 우선 통제 코드로 바뀌었거든요. 근데 방송 어디에도 그 내용이 없어요."

응급실 안이 조용해졌다. 환기구 빛이 조금 더 기울어졌다. 비상등 붉은빛이 하린의 태블릿 화면 위로 번졌다.

"그럼 어느 루트도 공식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거잖아요."

유리가 말했다. 판결문 읽듯 담담했다.

세온은 하린의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화면을 들여다봤다. 타임스탬프. 코드 변경 시각. 어젯밤 11시 47분. 봉쇄 안내방송이 마지막으로 송출된 시각은 오후 8시 30분이었다. 세 시간 넘게 차이가 났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코드를 건드렸다. 세온은 숫자를 두 번 읽었다. 두 번 다 같았다.

"윤호 씨."

세온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불렀다.

"이거 알고 있었어요?"

윤호는 이번엔 3초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요."

너무 빨랐다. 아까 동쪽 루트를 막을 때와 정반대의 속도였다. 세온은 그 차이를 기억해 뒀다. 막을 때는 느리고, 부정할 때는 빠른 사람. 그 패턴이 어느 쪽이 거짓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때 도혁이 움직였다. 슬쩍, 아무도 보지 않는 척하며 서비스 통로 방향으로 반 걸음 옮겼다. 발소리가 없었다. 의도적으로 없앤 발소리였다. 태민이 먼저 알아챘다. 손을 뻗지 않고 목소리만 냈다.

"어디 가."

도혁이 멈췄다. 돌아보며 씩 웃었다.

"소변."

한 단어였다.

"거기 화장실 없어."

태민이 말했다.

"알아. 어제도 없었거든."

도혁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표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잡혔을 때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두 종류다. 정말 아무 의도가 없거나, 잡혀도 상관없을 만큼 준비가 됐거나. 세온은 도혁이 어느 쪽인지 아직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이 빠르면 틀린다.

세온은 결론을 냈다.

"오늘 이동은 서쪽으로 한다. 단, 진입 코드 변경 구간 직전에서 멈추고 상황 재확인 후 결정한다. 이동 인원은 셋. 나, 태민, 유리."

잠깐 멈췄다.

"나머지는 여기 남는다."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도혁은 시선을 천장으로 올렸다. 윤호는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세온은 그 손이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쥐는 형태가 되는 걸 봤다. 종이인지, 장치인지, 아니면 그냥 주먹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쥐는 방식이 있었다. 익숙하게, 반사적으로. 처음 쥐는 물건을 쥐는 손이 아니었다.

"남는 사람들."

세온이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단독 이탈 없다. 이건 규칙이고, 오늘부터 실전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것이 동의인지 거부인지는 이동이 끝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회의가 끝났다.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흩어졌다. 세온은 응급 키트를 다시 묶으며 유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유리가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걸 보고 있다는 신호였다. 세온은 그 끄덕임이 신뢰인지 전술적 동의인지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환기구 빛이 이제 바닥에 수직에 가까워졌다. 오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약국까지의 거리는 실측 250미터. 그 250미터 안에 어젯밤 누군가가 바꿔 놓은 코드와, 윤호가 말하지 않은 이유와, 도혁이 가려다 멈춘 방향이 전부 포개져 있었다. 세온은 키트 끈을 두 번 당겨 조였다. 단단하게. 이동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윤호의 주머니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걸 확인하지 않고 나가는 건 250미터가 아니라 그 이상을 모르는 채 걷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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