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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3화]

빗소리가 먼저 알았다

작성: 2026.04.17 12:18 조회수: 33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봄비는 새벽에 왔다가 아침에 그쳤고, 점심쯤 다시 왔다. 강민주는 두 번째 빗소리를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묻혀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창문에 물줄기가 생기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을 때, 가게 안 공기는 이미 눅눅해져 있었다. 스팀 다리미를 쓰는 세탁소가 봄비를 만나면 습도가 층층이 쌓인다. 거기다 오늘은 점심 손님이 몰렸다. 민주는 땀을 닦으면서 창문을 조금 열었다가 빗물이 튀는 바람에 바로 다시 닫았다.

"어머, 또 오네."

카운터 뒤에서 혼잣말을 했다.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하는 혼잣말은 이상하게 더 크게 들렸다. 준수는 아침 일찍 나갔다.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가방이 평소보다 무거워 보였다. 책이 많은 건지 다른 게 들어 있는 건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면 물어봐야 하고, 물어보면 뭔가 대답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또 부딪힌다. 민주는 그 연결고리를 오늘 아침엔 그냥 끊어 뒀다.

문제는 오후 세 시쯤 생겼다. 세탁소 안쪽 선반 위, 하늘색 플라스틱 케이스를 올려둔 자리 바로 아래 바닥에 작고 둥근 물 얼룩이 번져 있었다. 민주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손님이 들어오면서 우산에서 떨어진 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손님은 아까 나갔고, 얼룩은 그 뒤로도 조금씩 더 퍼지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천장 모서리 쪽이 희끗하게 배어 있었다. 지난 겨울 얼었다 녹은 자리가 봄비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아, 이게 또."

이번엔 혼잣말이 아니라 욕에 가까웠다. 민주는 창고에서 대야를 꺼내 그 자리에 받쳤다. 양동이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양동이는 작년 여름 복도 청소 때 쓰고 나서 어디 뒀는지 기억이 안 났다. 대야 안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탁, 탁, 탁 이어졌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사이에서 그 소리가 묘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박명자가 들어온 건 그로부터 이십 분쯤 뒤였다. 비닐봉지를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우산은 바깥에 탁 세워 놓고 들어왔다.

"세탁소 문이 열려 있길래. 이거, 아까 떡볶이 집에서 포장해 왔어. 오늘 거기 사장이 나한테 공짜로 하나 더 줬거든. 이웃사촌이라고. 민주 씨 좋아하잖아요, 떡볶이."

"명자 씨, 저 지금 대야 들고 있어요."

명자가 대야를 내려다봤다. 탁, 하고 한 방울이 다시 떨어졌다.

"어머. 또 샜어요? 작년 가을에 위에 실리콘 쳤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반 년을 못 버티네요."

민주가 대야를 좀 더 안쪽으로 밀면서 몸을 일으켰다.

"앉으세요. 떡볶이 두고 가시면 제가 나중에 먹을게요."

"같이 먹어야지. 나 오늘 저녁 약속 없어요."

명자는 이미 카운터 옆 의자에 앉아 봉지를 뜯고 있었다. 민주는 잠깐 사이에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천장 쪽을 한 번 더 올려다봤다. 얼룩이 오른쪽으로 조금 더 번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이길 바랐다.

"그나저나 오늘 준수 씨 못 봤어요. 요즘 일찍 나가던데."

"수업 있다고요."

"수업이 밤에도 있어요?"

명자가 떡볶이 한 개를 집으면서 툭 던졌다.

민주는 대답을 잠깐 멈췄다.

"무슨 소리예요."

"어제 밤 열 시 넘어서 상가 골목에서 봤거든요. 편의점 쪽으로 가더라고. 아, 뭐 그냥 지나치면서 봤으니까. 편의점 알바일 수도 있고."

명자가 말끝을 흐렸다. 눈치를 본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민주는 떡볶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맵고 달았다. 씹으면서 대야 쪽을 봤다. 탁, 탁.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편의점. 준수가 거기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는 건 민주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확인하지 않았을 뿐이다. 확인하는 순간 그걸 말리거나 묵인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처럼 살고 있었다. 그게 더 나쁜 건지 덜 나쁜 건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명자는 한 봉지를 거의 혼자 비웠다. 수다는 골목 부동산 얘기로 넘어갔다가 복사집 사장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또 떨어졌다는 얘기로 흘렀다. 민주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카운터 서랍에 있는 영수증 뭉치를 정리했다.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계속됐다.

명자가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맞다. 오늘 낮에 빈 점포 앞에 그 남자 또 있었어요."

민주의 손이 멈췄다.

"어떤 남자요."

"저번에 서류 봉투 들고 있던 사람. 이번엔 봉투가 없던데. 그냥 셔터 쪽을 보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니까 고개 숙이고 가더라고요. 아는 척하기도 뭣하고 나도 그냥 지나쳤는데."

명자가 우산을 집으면서 덧붙였다.

"민주 씨, 그 빈 점포 주인이 누군지 알아요?"

"…건물주 명의 아닌가요?"

"그게, 명자 씨 조카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명자가 문쪽으로 걸어가다 반쯤 돌아봤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고, 조카가 말을 안 해서. 어쨌든 요즘 그쪽이 좀 수상하다 싶어서요."

명자는 그 말을 남기고 나갔다. 우산 펴는 소리가 들리고 빗소리 속으로 발소리가 사라졌다.

민주는 한참 동안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대야 안에 빗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세탁기는 탈수 단계에 들어갔는지 진동이 바닥으로 전해졌다. 명자 씨 조카. 그 이름이 이쪽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 아직 연결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서류 봉투 든 남자가 봉투 없이 다시 왔다는 건, 뭔가를 이미 꺼내 갔거나 아니면 안을 확인하고 돌아갔다는 뜻이었다.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어 준수가 들어왔다. 민주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찌개를 데우고 있었다. 준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밥 있어요?" 하고 물었다. 목소리에 피로가 배어 있었다.

"데우고 있어. 손 씻어."

준수가 욕실로 들어갔다. 민주는 찌개 뚜껑을 열어 한 번 저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물 소리가 들렸다. 손 씻는 시간이 좀 길었다. 피곤할 때 그렇게 된다는 걸, 민주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서 준수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민주는 맞은편에 앉아 천장 쪽을 한 번 올려다봤다. 오늘 밤은 비가 더 세지지 않기를 바랐다. 대야가 넘치면 또 닦아야 했다.

"오늘 어땠어."

민주가 물었다.

"그냥요."

준수가 찌개를 떴다가 잠깐 멈췄다.

"천장에서 물 새요?"

"응. 대야 받쳐 뒀어."

"또."

"또."

둘은 잠깐 조용히 먹었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다시 굵어졌다. 준수가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을 봤다가 내렸다. 민주는 그 눈길을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그걸로 충분했다. 지붕이 새는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오늘 저녁은 버티는 것이었다.

다만 자리를 치우다 창문 너머 골목 쪽을 보았을 때, 빈 점포 방향 어딘가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한 번 흔들렸다가 사라졌다. 비 때문에 번진 가로등 빛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민주는 행주를 손에 쥔 채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돌렸다. 확인하러 나가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내일 아침 셔터를 올리기 전에, 먼저 그쪽을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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