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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8화]

숫자가 없는 아침

작성: 2026.04.11 23:45 조회수: 4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아침 공기는 겨울 변경 특유의 냄새를 달고 왔다. 젖은 짚과 쇠 냄새, 그리고 어젯밤 꺼지다 만 화톳불의 잔기. 엘리안은 협상실로 쓰이는 서쪽 접견방 창가에 서서 안마당을 내려다봤다. 세라의 부하 세 명이 막사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의 걸음이었다. 숫자를 가진 쪽이 언제나 그런 걸음을 걷는다.

탁자 위에는 어젯밤 엘리안이 직접 옮겨 적은 창고 목록이 놓여 있었다. 겨울 비축분 열여섯 항목. 그중 아홉 항목 옆에는 실제 잔량이 적혀 있었고, 나머지 일곱 항목 옆에는 선이 그어진 채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물음표가 일곱 개인 테이블에서 보급 협상을 한다는 것은, 칼집 없는 칼을 들고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리안은 목록지를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숫자를 바꿀 수는 없었다. 바꾸면 두 달 뒤에 더 큰 값을 치러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손이 잠깐 멈췄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센 영감이 새벽에 다시 왔습니다."

하르트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어젯밤 창고 앞에서 찾아왔던 창고지기 노인이었다. 엘리안은 창가에서 돌아섰다.

"뭘 가져왔습니까?"

"쪽지입니다. 손이 떨려서 글씨가 반쯤 뭉개졌는데."

하르트가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열흘 전, 토르빈이 짐을 빼낼 때 같이 움직인 수레가 두 대였다고 합니다. 마센 영감은 한 대만 봤다고 했는데, 새벽에 잠이 깨면서 생각이 났다는군요. 두 번째 수레는 동문이 아니라 북문 쪽으로 빠졌습니다."

엘리안은 쪽지를 받아 펼쳤다. 글씨는 하르트 말대로였다. 노인의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선이 두 번씩 그어져 있었다. 그래도 읽을 수는 있었다. 북문. 라이든 방향. 그리고 수레 바퀴 자국이 라이든 상단 표준 폭이었다는 한 줄. 엘리안은 쪽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잠시 서 있었다. 마센 영감이 새벽에 잠을 깨면서 기억을 꺼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노인이 두려워서 숨겼다가 더 두려워서 내놓은 건지, 아니면 진짜로 그제야 떠올린 건지. 어느 쪽이든 지금은 쓸 수 있는 정보였다.

루키안이 접견방 안으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외투에 아직 바깥 냉기가 남아 있었다. 말 냄새도 났다. 새벽부터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의 냄새였다.

"새벽에 나갔다 왔습니까?"

엘리안이 묻자 루키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밀렌 마을 쪽 길목에 세워 둔 게 있었습니다. 4화 때 표식 탁본 떠 온 거, 기억하십니까."

루키안이 외투 안주머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베도르 공작가 납품 상단이 쓰는 봉인 문양이 라이든 상단 북부 지부 표식과 이음새가 같습니다. 같은 각인 틀에서 나온 겁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위장 용도로 쓰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같은 사람이 두 이름으로 굴린 거고."

하르트가 그 말을 듣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도, 시선도. 그 정지가 오히려 방 안의 공기를 잠깐 다른 온도로 바꿨다. 엘리안은 하르트를 보지 않은 척 루키안의 양피지를 받아 들었다. 각인 문양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었다. 선의 굵기, 꺾이는 각도, 바깥 테두리의 두께. 눈으로 봐도 같았다.

"이걸 세라한테 보여줄 수 있습니까?"

"보여주는 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루키안이 시선을 하르트 쪽으로 한 번 흘렸다가 엘리안에게 돌렸다.

"이 표식이 어디까지 연결되는지는, 협상이 끝나고 나서 얘기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라였다.

회색늑대 단장은 혼자 들어왔다. 부하들은 안마당에 세워 둔 모양이었다. 외투를 입은 채였고, 탁자 위의 목록지를 보자마자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세라가 의자를 끌어당기기 전에 방 안을 한 번 훑었다. 루키안을, 하르트를, 그리고 엘리안을. 순서가 있었다.

"아홉 개네요. 실제 수치가 있는 게."

엘리안은 탁자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나머지 일곱은 어젯밤까지 확인이 안 됐습니다. 숫자를 부풀려 드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면 두 달 뒤에 세라 단장 앞에서 다시 사과해야 하니까요."

세라가 의자에 앉았다. 팔꿈치를 탁자에 올리고 목록지를 쭉 훑었다. 손가락이 물음표 항목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넘어갔다.

"사과를 미리 계산한다는 게, 당신 방식이군요."

"생존 방식입니다."

짧은 침묵이 왔다. 세라가 목록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병력 기준은 오십이었습니다. 이 수치로는 삼십오가 한계입니다. 겨울을 나는 동안."

세라가 엘리안을 봤다.

"당신이 나한테 제시할 수 있는 게 숫자 말고 뭐가 있습니까?"

엘리안은 루키안의 양피지를 탁자 위에 놓았다.

"토르빈이 빼낸 물량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북문 방향, 라이든 상단 경로. 그리고 그 상단의 봉인 문양이 베도르 공작가 납품처와 같은 각인에서 나왔다는 물리적 근거입니다."

엘리안이 양피지를 세라 쪽으로 밀었다.

"세라 단장이 베도르와 어떤 악연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정보가 세라 단장한테 아무 의미도 없다면 저도 다른 걸 찾겠습니다."

세라는 양피지를 내려다봤다. 손으로 집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손가락으로 문양 쪽을 눌렀다. 누르는 힘이 조금 강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루키안이 숨을 참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베도르 쪽에서 로벨 영지 보급 실태를 파악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토르빈이 북문을 나선 게 열흘 전입니다.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라가 양피지에서 손을 뗐다.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뭔가를 계산하는 사람의 자세였다. 엘리안은 그 침묵을 건드리지 않았다. 서두르면 지는 자리였다.

"삼십오로 시작합니다. 단, 조건이 하나 추가됩니다."

세라가 말했다.

"라이든 상단 북부 거점에서 짐이 마지막으로 움직인 날짜를 이 주 안에 확인해 주십시오. 당신 마도사가 할 수 있으면."

루키안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엘리안이 그 쪽을 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세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록지와 양피지를 탁자 위에 그대로 뒀다. 나가면서 문을 잡고 한 번 돌아봤다.

"아홉 개짜리 숫자를 들고 협상 자리에 앉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나머지 일곱 개를 채워서 옵니다. 그게 어떻게 끝나는지는 당신도 압니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방 안에 세 사람이 남았다. 루키안이 탁자 위 양피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 주."

루키안이 혼잣말처럼 했다.

"촉박하군요."

"할 수 있습니까?"

"하는 거야 하죠."

루키안이 외투를 여몄다. 바깥 냉기가 아직 천 안에 남아 있었다.

"다만, 라이든 북부 거점에 직접 사람을 넣어야 합니다. 거기서 뭔가 나오면, 그때는 이름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르트가 그 말에 미세하게 굳었다. 엘리안은 봤다. 못 본 척했다. 하르트의 손이 허리춤 검 손잡이 근처에서 멈춰 있었다. 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손을 두는 사람의 자세였다. 오래된 버릇이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참는 방식이거나.

세라가 나간 뒤 방 안은 협상 전보다 조용해졌다. 탁자 위의 목록지는 그대로였다. 물음표 일곱 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엘리안은 창가로 다시 걸어가 안마당을 내려다봤다. 세라의 부하들이 단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라가 막사 쪽으로 걷는 걸 보면서 엘리안은 이 주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가늠했다. 베도르가 이미 알고 있다면 이 주는 없다. 이 주가 남아 있으려면 베도르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루키안이 말한 이름이 나오는 순간, 이 방 안의 공기는 다시 한 번 바뀔 것이다. 하르트가 그 이름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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