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안이 성 안마당에 말을 들일 때는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말 발굽 소리가 돌바닥에 울렸고, 망루 위 보초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들어갔다. 엘리안은 안마당 계단 아래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짐이 늘지 않았다. 올 때 들고 간 낡은 마도구 측정기와 가죽 지갑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뭔가를 알아냈다는 뜻이었다.
마구간 쪽에서 젖은 짚 냄새가 흘러왔다. 마부 아이 하나가 빈 여물통을 끌고 지나갔고, 그 소리가 안마당 돌벽에 짧게 부딪혔다. 루키안은 말에서 내리면서 허리를 한 번 두드렸다. 마도사 체형이 말 위에서 반나절을 버텼다는 증거였다. 안장 가죽이 땀으로 검게 젖어 있었다.
"무사하군."
"영주님이 보내신 길인데 무사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루키안이 말고삐를 마부에게 넘기며 짧게 웃었다. 웃음이 눈까지 오지는 않았다.
"결과부터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밥부터 먹을까요."
"둘 다."
엘리안이 먼저 돌아섰다.
"세라도 불러."
루키안이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의 길이가 조금 길었다. 엘리안은 느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보초가 교대하는 발소리가 성벽 위쪽에서 들렸고, 엘리안은 그 소리를 세면서 걸었다. 루키안이 없는 반나절 동안 병력이 얼마나 적어 보였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식당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공간이었다. 기름때 낀 탁자 두 개를 붙여 놓고, 촛대는 세 개 중 하나가 이미 다 타 있었다. 하르트가 탁자 한쪽 끝에 장부 하나를 놓았다가 루키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슬쩍 가렸다. 그 손짓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세라는 칼을 허리에서 풀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칼집이 의자 옆구리에 닿아 낮게 쇳소리를 냈다. 용병 버릇인지 습관인지, 엘리안은 묻지 않았다.
빵과 소금에 절인 고기가 나왔다. 성대한 것은 없었다. 엘리안은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세라도 따로 말하지 않았다. 루키안이 라이든 상단 북쪽 거점 이야기를 꺼낸 건 빵 덩어리가 반쯤 줄었을 때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확했다. 거점 자체는 확인했다. 교역 품목도 대략 파악했다. 문제는 장부였다.
"장부가 두 권이었습니다. 한 권은 공식 거래 기록이고, 다른 한 권은 별도로 묶여 있었는데."
루키안이 빵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잠깐 말을 끊었다.
"거기서 이름 하나를 봤습니다."
세라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하르트의 손이 장부 위에서 가만히 멈췄다. 엘리안은 그 두 반응을 동시에 읽었다. 소리를 낸 쪽과 멈춘 쪽. 방향이 달랐다.
"어떤 이름?"
엘리안이 물었다.
"그건."
루키안이 촛불 쪽을 보았다가 다시 엘리안을 보았다.
"나중에 둘이 있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라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하르트는 손을 장부에서 떼지 않았다. 엘리안은 잠시 루키안의 얼굴을 읽으려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강요해서 나올 말이 아니라는 건 한 번 보면 알 수 있었다.
"좋아."
엘리안이 잔을 들었다. 잔 안에 남은 건 물이었다.
"그럼 지금은 거점 구조 이야기만."
루키안이 설명을 이어 가는 동안 세라는 줄곧 말이 없었다. 교역 경로가 북쪽 두 갈래로 나뉜다는 것, 한 갈래는 베도르 공작 영지 방향으로 빠진다는 것, 거점 창고에 보관된 품목 중 일부가 마도 재료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 루키안이 말할수록 탁자 위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하르트가 손가락으로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가 뗐다. 그 손이 장부 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베도르 방향이라면."
엘리안이 잔을 내려놓았다.
"경로 중간에 검문이 있나?"
"공식 검문은 없었습니다. 대신 거점 관리인이 따로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구에게 보고하는지는 확인 못 했습니다."
루키안이 어깨를 한 번 움직였다. 갑옷도 없는 어깨였는데 그 움직임이 무거워 보였다.
"하루 더 있었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루 더 있었으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
엘리안이 말했다.
루키안이 짧게 웃었다. 이번엔 눈까지 왔다. 세라가 그 교환을 지켜보았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시선의 각도가 조금 달라졌다. 엘리안은 그것을 눈꼬리로 확인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 하르트가 먼저 자리를 떴다. 루키안이 뒤를 따라 나가려다 엘리안의 눈짓을 보고 멈췄다가, 세라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결국 문을 닫았다. 두 사람만 남았다.
세라가 팔짱을 꼈다. 의자를 뒤로 조금 밀었다. 칼집이 의자 다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촛불 하나가 기울어지며 촛농이 탁자 위로 흘렀다. 세라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조건 이야기를 해야죠."
"그러려고 했어."
"아니."
세라가 고개를 저었다.
"조건보다 먼저 물어볼 게 있어요. 오늘 루키안을 보낸 건 정보가 필요해서였죠."
"맞아."
"그 반나절 동안 성 안에 병력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고 있죠?"
세라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없었다. 그게 오히려 무거웠다.
"외부 시선이 있다는 거 알면서 루키안을 보낸 거잖아요. 그 선택의 근거가 뭔지 묻는 겁니다."
엘리안은 잠시 촛불을 봤다. 촛농이 흘러 탁자 위에 굳어 있었다. 거기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말이 좀 더 정확하게 나왔다.
"정보 없이 지키는 건 문을 잠그고 눈을 감는 것과 같아. 병력 반나절 공백보다 라이든 상단 경로를 모르는 게 더 오래, 더 크게 위험했을 거야."
엘리안이 세라를 보았다.
"틀렸다면 말해."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아직 판단을 완전히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가지가 동시에 맞을 수 있다는 걸 엘리안은 알고 있었다.
"회색늑대는 조건 맞으면 움직여요."
세라가 팔짱을 풀었다.
"근데 나는 조건보다 그 조건을 내건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더 오래 봐요. 오늘 본 건 그거였고."
세라가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손등에 오래된 칼자국이 있었다. 검날이 아니라 쇠사슬에 쓸린 자국처럼 넓고 납작했다. "한 가지만 물을게요. 당신이 잃을 수 없는 게 뭐예요?"
엘리안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빠르게 나오는 말이 진심일 때도 있지만, 이건 빠르게 내놓으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창틈으로 바람이 드는 것인지, 그냥 타오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엘리안은 그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
엘리안이 말했다.
"병력이 아니라 사람. 이름 부를 수 있는 쪽."
세라가 손을 탁자에서 거뒀다. 표정은 여전히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의자를 다시 앞으로 당겼다. 그 소리가 작았지만 엘리안에게는 또렷하게 들렸다.
"내일 아침에 구체적인 숫자 이야기 합시다. 병력 수, 체류 기간, 보급 기준."
세라가 일어섰다.
"오늘 밤은 여기까지."
문이 닫히자 엘리안은 혼자 탁자 앞에 남았다. 촛불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하나가 언제 꺼졌는지 몰랐다. 그을음 냄새가 공기 아래쪽에 얇게 깔려 있었다. 하르트가 가려 놓은 장부가 탁자 끝에 그대로 있었다. 열지 않은 채로.
엘리안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지금 열면 루키안의 이름 이야기 전에 읽는 것이 된다. 순서가 있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신뢰였다. 손을 거두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남은 촛불 두 개가 탁자 위에 서로 다른 그림자를 만들었다.
루키안이 혼자 있을 때 말하겠다던 이름은 오늘 밤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왜 지금 당장 꺼내지 않는지. 엘리안은 그 두 가지 질문을 촛불 옆에 나란히 놓았다. 장부도, 이름도, 오늘 밤은 닫혀 있었다. 닫힌 것들은 언제나 내일 더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