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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계약서 뒤의 눈빛

작성: 2026.04.04 23:29 조회수: 35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아침 아홉 시, 아르덴 호텔 2층 소회의실의 에어컨은 여전히 삐걱댔다. 서린은 그 소리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지만, 오늘은 유독 신경에 걸렸다. 테이블 위에 프린트해 놓은 협업 제안서를 다시 훑었다. 세 장짜리 문서였는데 밑줄이 열두 군데였다. 도윤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할지, 머릿속으로 대사를 미리 써보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그는 예상한 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지민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테이크아웃 커피 두 잔을 내려놓았다.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것 하나에서 흰 증기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근데 저 물어봐도 돼요? 오늘 도윤 씨한테 직접 설득하는 거 맞죠?"

"응."

"서린 씨가? 직접?"

서린은 서류에서 눈을 올렸다.

"지민아, 그 말투 거슬려."

"아니, 거슬리라고 한 게 아니라."

지민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빨대를 꽂았다.

"그냥 궁금한 거죠. 도윤 씨가 저한테 물어봤거든요. 오늘 뭐 잡혀 있냐고. 제가 회의 있다고만 했는데."

서린이 잠시 멈췄다.

"그게 전부야?"

"네. 왜요?"

"아니."

다시 서류를 봤다.

"그냥."

사실 '그냥'이 아니었다. 도윤이 먼저 일정을 물어봤다는 건, 오늘 자리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짐작이 어디서 왔는지가 문제였다.

도윤은 정각에 들어왔다. 늦지도 않고 일찍 오지도 않았다. 검은 면 재킷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아르덴 것이 아니었다. 밖에서 사 온 것이었다. 서린은 그 디테일을 눈에 담았다가 모른 척했다.

"앉아요."

서린이 먼저 말했다.

도윤은 앉으면서 테이블 위의 제안서를 훑었다. 손으로 집지는 않았다.

"읽어봐도 돼요?"

"읽으라고 뒀어요."

그가 첫 장을 넘겼다. 서린은 말을 아꼈다. 설명을 먼저 꺼내는 쪽이 불리한 자리였다. 지민이 핸드폰을 뒤집어 무음으로 놓는 소리가 작게 났다.

"테이블 서울, 첫 촬영 날짜가 여기 있네요."

도윤이 두 번째 장에서 멈췄다.

"삼 주 후."

"민재원 PD랑 어제 다시 통화했어요. 소프트 오픈 시기에 맞추려면 그게 마지노선이라고."

"그쪽 사정이."

"우리 사정도요."

서린이 바로 받았다.

"예산 보류 상태예요. 배성재 측에서 아직 집행을 안 하고 있어요. 미디어 노출이 확정되면 움직인다는 조건을 달았고."

도윤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다음 말이 나오기까지 3초쯤 걸렸다.

"배성재 씨가 저한테도 연락했어요. 어젯밤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지민이 빨대를 입에서 뺐다. 서린은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했지만, 미간에 힘이 들어간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슨 내용으로요."

"직접 만나자고. 도윤 씨가 아르덴에서 제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고."

도윤이 잠깐 웃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굉장히 친절한 문자였어요."

서린은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을 썼다. 배성재가 도윤에게 직접 접근했다는 건, 이 협업 구조를 자기 손 안에 두겠다는 뜻이었다. 아르덴을 살리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도윤을 자기 카드로 쓰겠다는 계산이었다.

"뭐라고 답했어요?"

"아직요."

도윤이 서린을 봤다.

"서린 씨한테 먼저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 말이 예상 밖이었다. 서린은 잠깐 그 문장을 되새겼다. 먼저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게 계산인지, 진심인지, 아니면 그 경계 어딘가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고마워요."

서린이 짧게 말했다.

"그게 다예요?"

"지금은요."

도윤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멈췄다. 그러다 지민을 보았다. 지민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귀는 쫑긋한 게 뻔했다. 도윤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지민 씨, 저 오늘 메뉴 시안 좀 봐줄 수 있어요? 소프트 오픈용으로 만들어본 게 있는데."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아, 저요? 지금요?"

"급하진 않은데 저 혼자 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지민은 서린을 흘끔 보았다. 서린이 눈짓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지민은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배성재 씨가 테이블 서울을 먼저 연결했어요."

도윤이 먼저 꺼냈다.

"민재원 PD, 그쪽 사람이에요. 배성재 씨 쪽에서 먼저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있어요."

"어제 미팅에서 나왔군요."

"민재원이 나가면서 말했어요."

서린이 잠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근데 그 사람이 왜 그걸 우리한테 말했는지가 아직 이상해요."

도윤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이상하다는 게."

"배성재가 연결해준 채널이라는 걸 알게 되면 우리가 조심할 거잖아요. 굳이 알릴 이유가 없죠. 근데 민재원은 말했어요."

서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기 선택으로."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에어컨이 다시 삐걱댔다.

"민재원이 배성재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도윤이 천천히 물었다.

"아니면 배성재가 두 곳에 동시에 베팅하고 있거나."

서린이 서류를 한쪽으로 밀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판에서 도윤 씨 카드는 어느 쪽으로든 쓰일 수 있어요."

그 말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도윤은 서린을 보고 있었다. 서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지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도윤이 먼저 눈을 내렸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이번엔 정확하게."

"카메라 앞에 서는 거요. 배성재 연락에는 답하지 않는 거. 그리고."

서린이 잠깐 멈췄다.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말해줬으면 해요."

도윤이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서린을 보았다. 그 짧은 이동 사이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할게요."

서린은 그 대답의 온도를 잠깐 가늠했다. 거절도 아니고 약속도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 모호함이 답답했을 텐데, 지금은 그게 그나마 솔직한 말처럼 들렸다.

그날 오후, 지민의 SNS 계정에 실수로 올라간 사진 하나가 두 시간 만에 삭제됐다. 아르덴 주방에서 찍은 메뉴 시안 사진이었는데, 배경에 도윤의 옆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지민이 서린에게 전화해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삭제는 했는데, 캡처가 돌아다녀요."

서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창밖 주차장에 가을 햇살이 납작하게 깔려 있었다. 강도윤이 아르덴에 있다는 게 알려진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배성재의 다음 수가 어디서 나올지, 민재원이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체스판이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서린은 창문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할게요. 도윤의 목소리가 다시 지나갔다. 그 말 뒤에 뭐가 있는지, 서린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처음으로, 모르는 채로 조금 더 기다려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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